18대 낙천·낙선 23명중 16명
정부·공기업서 한자리 차지
박희태, 국회 재입성 성공 김덕룡·박형준은 청와대에
이재오는 권익위원장 임명
"경선 때 도운 사람들은 어떻게든 한 자리씩 하네."
박희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28 재선거 당선으로 차기 '국회의장 0순위'로 거론되면서 나오는 말이다. 박 전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이었지만, 18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었다. 이처럼 이명박 대통령을 경선때 도왔으나 낙천했거나, 공천을 받고도 떨어졌던 친이(親李)계 17대 의원 23명 중 16명이 정부 산하기관 등에 한자리씩 맡고 있다.
◆국회 재입성은 박희태가 유일
국회 재입성은 박 전 대표가 유일하다. 작년 총선때 낙선했던 박찬숙(경선 당시 TV토론대책본부장) 전 의원은 10·28 재보선에서 경기 수원 장안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정종복 전 의원은 지난 4월 재보선에 재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다른 전직 의원들은 대부분 정부 또는 정부 산하기관에 자리잡았다. 경선 캠프에서 박 전 대표와 공동 위원장을 맡았던 김덕룡 전 의원은 청와대 국민통합특보로 활동 중이다. 3선 의원들은 낙천·낙선된 9명 중 2명을 제외하곤 전원이 자리를 잡았다.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재오 전 의원은 10개월간의 미국 체류를 마치고 돌아와, 지금은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전국을 누비며 해묵은 민원들을 처리하고 있다. 경선때 박근혜 전 대표의 텃밭인 대구와 경북에서 친이 활동을 했던 안택수·김광원 전 의원은 작년 각각 신용보증기금 이사장과 한국마사회장에 취임했다. 김 전 의원의 경우,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정계은퇴 선언을 해 공천신청을 아예 하지 않았었다. 경선 때 선대위 부위원장 겸 특보단장이었던 권철현 전 의원은 주일 대사, 경선 캠프 직능위원장이었던 임인배 전 의원은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에 임명됐다. 정형근 전 의원은 건강보험 이사장, 이재창 전 의원은 새마을운동 중앙회장이다. 임인배 전 의원은 이번 국감 때 자료 미제출을 문제삼는 야당 의원에게 "사장 한번 해봐라. 정말 힘들다", "신이 내린 직장이 아니라 신이 버린 직장"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경선 때 정책기획위원장이었던 권오을 전 의원은 아직 직책이 없지만, 농림수산부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 후보 등으로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린다.
- ▲ 10·28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희태(경남 양산), 권성동(강원 강릉) 당선자가 30일 국회 한나라당 대표실에서 축하 꽃다발을 받은 뒤 당 지도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 터 안상수 원내대표, 박희태 당선자, 정몽준 대표, 권성동 당선자, 박순자 최고위원./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재선 의원 2명 중 공천에서 탈락했던 박계동 전 의원(서울 송파을)은 국회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다. 박 전 의원은 경선 땐 당직을 맡아 경선 캠프 직책은 없었지만, 대선때는 공작정치특위 위원장으로 이명박 후보에 대한 야당의 각종 공격을 방어했다. 총선 때 자신의 지역구인 경남 사천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에게 패한 이방호 전 의원은 별다른 정부 직책없이 당협위원장으로 지역구를 챙기고 있다.
이명박 캠프에서 활동하다가 낙천·낙선한 초선 의원 출신 10명 중 6명도 새 자리를 얻었다. 캠프 대변인이었던 박형준 전 의원은 낙선 뒤 청와대 홍보기획관을 거쳐, 정무수석으로 임명됐다. 부산 연제구에서 낙선한 김희정 전 의원은 한국인터넷진흥원장, 낙천됐던 이재웅 전 의원은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다. 국회의원에서 피감기관 책임자로 위치가 바뀐 이들은 올 국회에서 국정감사를 받았다.
경선 때 이명박 후보의 수행실장이었던 이성권 전 의원은 낙천 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상임감사로, 정책분야를 담당했던 김석준 전 의원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으로, 경선 때 충청지역을 담당했던 홍문표 전 의원은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경선 때 이명박 후보의 제1공약이었던 대운하 정책의 핵심 브레인이었던 박승환 전 의원은 정부 직책없이 법무법인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정치를, 아니 사회에서 조직생활을 하려거든 히메처럼 살지 말고 가카처럼 살아야 한다.
사실 노무찡은 그렇게 안살아서 손해를 보면서 국민들의 인심을 산거고
히메쨩은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렇게 안살 수 있었던거다.
돈도 빽도 없던 60년대 젊은 가카와 같은 일반인들은 저렇게 해야
가카와 같이 뉴스나 언론에 나오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