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04일
10만 군중의 힘.







1.
2004년의 10만 군중
국보법 사수 10만 궐기대회입니다. 대선 승리. 총선 승리. 진보세력은 계속해서 승리했습니다. 그 날 서울역 광장에는 10만이 모였습니다. 네티즌들은 이들을 비웃었지만 이때 모인 10만은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이 군중의 힘으로 당시 열우당이 추진하던 4대 개혁입법안은 박살이 났습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열우당은 원내 과반을 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정국의 주도권을 상실한 채 끌려다녔고 선거에서는 연패.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은 독재는 용납해도 이런 무기력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300여 시민단체.
당시 주요'배후세력'으로는 한기총과 같은 보수 개신교 단체들과 자유총연맹, 뉴라이트 연합같은 300여개의 단체들이 출동했습니다. 한나라당의 배후에는 이런 10만 군중을 동원할만한 정치단체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국보법 폐지를 위해 모인 진보세력들은 만명도 채 되지 못했습니다. 물량의 차이. 단순 경상도와 전라도의 인구수의 차이만큼이나 저런 정치집단의 물량 차이또한 크게 작용합니다. 한나라당이 연패하고 탄핵열풍에 휩쓸려 날아갈때도 저런 조직력으로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이쪽은 나라가 망해도 국민 40%가 지지하는 정당이니까요.
한나라가 쓰러지지않아.
스타로 비유하자면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은 2해처리 저그이고 한나라당은 더블한 최연성이라 할만 합니다. 테란의 한방 병력을 2002년 대선에서, 2003년 총선에서 스탑러커와 플라잉디파일러로 몰살시켰습니다. 그럼에도 120석을 차지하고는 다시 또 무시무시한 한방이 되어 센터로 나옵니다. 그리고 4대 개혁 입법. 정권의 운명을 건 이 전투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실패합니다. 그리고 이 패배 이후 열우당은 정국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합니다. 센터싸움 한번 실수해서 그대로 본진이 밀린 셈입니다.
위와 촉의 대결.
삼국지로 비유하자면 위와 촉의 대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촉은 관중에서 그렇게 이겨도 장안 하나 차지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위는 한번의 승리로 성도를 차지하면서 대세가 기울어버립니다. 경상도 40%대 전라도 25%. 국보법 사수 10만대 국보법 폐지 1만. 이 근본적인 힘의 차이는 언제나 존재했었습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제갈량은 정치 9단 김대중 전 대통령에 비할만 합니다. 이런 세력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승리로 어쨌던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패하더라도 주력을 보존하는 스킬이 일품이었습니다. 정치 8단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강유쯤 될까요? 강공으로 나갔지만 DJ같은 세련됨이 부족해서 결국 본진이 털리고 정권을 내 주고 말았으니까요.
아직도!
10년간의 민주당 정권으로 다들 감각을 상실한거 같은데 87년 이후부터 한국 정치의 고질병은 지역감정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구도는 항상 진보세력을 막는 벽이 되어왔구요. 한나라당은 나라가 망하게 해도 40%가 지지하는 정당입니다. 민주당은 정동영 전 대표가 나와도 25%가 지지하는 정당입니다. 이 구도는 여전히 남아 있고 왠만해서는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누구 말마따나 DJ~도 가고~ 노통~도 갔으니까요.
2.
물타기.
사실 이때도 전경들의 진압이 있었고 물대포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배후주동자는 구속되어 징역을 살기도 했었죠. 지금 시위에서 전경이 폭력을 휘두른다지만 부안사태때의 폭력에 비하면 지금은 축제에 가깝습니다. 지금 분노하는 사람들이 선동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국보법 사수대회는 수구꼴통이라 무시하고 부안사태때는 좌빨이라 무시했던 것들이, 외면했던 현실이 이제는 우리 앞에 펼쳐진 탓이겠죠.
저는 이번 촛불 시위가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수혜를 받는게 진보신당이 되었던 민노당이 되었던 민주당이 되었던 박사모가 되었던간에 말이죠. 결국 정책을 결정하고 정책 결정을 감시하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입니다. 그러라고 뽑아준 사람들입니다. 좀 미덥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바에 가까운 정치집단에게 힘을 줘야 합니다. 그게 옳은건 아니지만 효율적인 거니까요.
10만의 힘.
무려 10만입니다. 서울에서 10만만 모여도 정권이 흔들 흔들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인듯 합니다. 저 군중은 결국 국가보안법을 지켜냈습니다. 지금 모인 10만은 불공정한 협상을 다시 돌릴만한 정치적 힘을 지닙니다. 그때는 덩달아 사학법도 박살이 났습니다. 지금 모인 10만은 대운하도 날려 보낼 기세입니다. 쇠고기 재협상과 대운하 반대. 이정도가 10만이 가지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덩달아 정국의 주도권도 완전히 내 줬죠. 아무리 물량의 한나라당이라지만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가져오려면 많은 고통과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 사이 민영화같은 각종 나쁜 정책들을 막을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10만의 힘.
그래봤자 10만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10만이 모였지만 이정도로 헌법에 의거한 국민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의 지위가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정국의 주도권은 내 줬지만 입법을 제외한 많은 부분에서 대통령의 자신의 업무를 흔들리지 않고 추진 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권력을 잡은 정통정부를 부인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독재정권이라면 몰라도 100만이 모여도 현 대통령을 하야시킬 수는 없습니다. 무었보다 국민들이 거기까지는 원하지 않을 것이구요. 개인적으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6공화국의 헌법은 80년대 민주화 투쟁으로 힘겹게 얻은 것이고 이런 헌정체계를 흔드는 것은 유익한 일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냥 이런 저런 잡생각들입니다.
# by | 2008/06/04 18:11 | 정치 이야기 | 트랙백 | 핑백(1)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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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bsp;포즈 걸고 개꼬장 부림. (탄핵)심판(궁민) 난입하여 테란한테 경고 먹이고 경기 속행그러나 테란이 또다시 한방(120석) 갖추고 중앙 싸움걸러 나옴. 이 와중에 저그 본진에 투드랍쉽 떨어짐 여당인 열우당 손에 어지러워져서 중앙 싸움 패퇴, 머릿수는 많은데 전혀 힘을 못씀.장판파(BBK 특검)으로 버텼으나 결국 두번의 대규모 전투에서 (대선, 총선 ... more
80년대는 진짜 살벌했었죠.
헉 근데 다시보니 정말 저 성조기는 부끄럽기 그지없네요 ㅠ
이런 글이 늘어나야 그와 같은 전략이 힘을 못씁니다. 생각만 해서는 안되고 최소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 무엇을 할 수 있나에 관해 '맥락적'사고가 필요하고 그로부터 얻어낸 결론이라면 '때'를 놓치지 말고 단행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이어야한다'는 글쓴분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그 주장이 '이념을 담게 하려는 어설픈 준동'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저는 표현을 조금 구체화 하겠습니다. 이번 시위는 '정치적 성과'를 얻어야 한다고 표현하겠습니다.
촛불시위가 촉발된 바, 쇠고기 협상안 자체의 오류 수정을 비롯하여 상실된 검역 주권을 되찾는 것이 첫째 얻어야 할 성과. 촛불시위가 확산되며 격화되고 국민의 분노와 국가의 혼란이 증폭된 바, 정부의 권력 전횡적 국정운영에 관해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을 법제화하는 것이 두번째 얻어야 할 성과. 국가적 중대 정책 결정과 추진 과정에 있어서 국민 의사를 직접 반영할 것을 법제화 하는 것이 세번째 얻어야 할 성과라고 봅니다.
막연히 정치적이 되어서 어느 당과 명운을 같이하게 될것인가하는 국소적인 정치 화제가 주안점이 아니라, 앞으로의 국정운영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을 위반하지 않도록 주권 국민으로서 정치력을 발휘하고 그 성과를 얻는 계기로서 '정치적일수밖에 없는 시위'가 되고 있으며 되어야 하고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배후가 국민이라서 기존 정치를 보는 사고로는 해석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여기에서 얻어진 소득은 시위의 주동세력이자 배후세력인 국민으로 돌아갈 것이며 앞으로 득세할 정당은 이와 같은 국민주권주의의 맥락에 가장 잘 부합하는 정당이 될 것이라는 판단 이외에, 과연 어느 정당이 여기에 가장 잘 부합하는 정책을 펴고 의정활동을 할 수 있을런지는 현재로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